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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물리학상''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 아인슈타인

 

 

 

 

 

 

 

 

 

 

 

 

 

 

 

 

 

 

 

 

 

 

 

 

 

 

1879년 3월 14일 독일 울름에서 유대인으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평범한 사업가였으며 가족들은 유대교 의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어린시절 판에 박힌 학습과 교육방식을 경멸하여 무례한 행동이 잦았다고 전해진다.
청소년기에 수학과 물리학에 취미를 가졌고 아라우(Aarau)에 있는 주립학교로 진학하여 과학수업에 심취했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 낙방하였다가 재수를 하여 물리학과에 입학하였다.

1901년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고자 하였지만 자리를 얻지 못해 베른 특허국의 관리 자리를 얻어 5년간 근무하였다.
1903년 대학 동창이자 공동연구자 였던 밀레바 마릭(Mileva Maric)과 결혼하였고 15년 후 이혼하게 된다.

1905년 빛이 에너지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는 광양자설, 물질이 원자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브라운운동의 이론,
물리적 시공간에 대한 기존 입장을 완전히 뒤엎은 특수상대성이론 논문을 발표하였다.

특수상대성이론은 당시까지 지배적이었던 갈릴레이나 뉴턴의 역학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종래의 시간·공간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혁시켰으며, 철학사상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몇 가지 뜻밖의 이론, 특히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성(等價性)의 발견은 원자폭탄의 가능성을 예언한 것이었다.
브라운운동에 관한 기체론적 연구는 분자물리학에 새로운 국면을 열었고, 플랑크의 복사법칙을 검토하여 광양자설에 도달, 그 예로서 광전효과를 설명하였다.

1911년 국제물리학회가 최초로 개최될 때 참가하여 세계적인 물리학자로서 인정을 받았으며 형이상학에 반대하고 철학은 과학으로 부터 결론을 얻어야 한다는데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1913년 베를린대학 교수겸 카이저 빌헬름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하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나, 그 동안 자신의 특수상대성이론을 중력(重力)이론이 포함된 이론으로 확대하고자,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일반상대성이론의 기초), 이 이론에서 유도되는 하나의 결론으로서 강한 중력장(重力場) 속에서는 빛은 구부러진다는 현상을 예언하였다.
이것이 영국의 일식관측대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광전효과 연구와 이론물리학에 기여한 업적으로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으며,
그 후 중력장이론으로서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중력장과 전자장의 이론으로서의 통일장이론으로 확대할 것을 시도하였다.

1920년대에 들어서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특히 그의 특이한 외모(헝클어진 머리, 콧수염, 보헤미안적 스타일)와
체면을 세우지 않는 행동 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었다.
유대인 출신인 그는 유대민족주의·시오니즘운동의 지지자, 평화주의자로서 활약하였다.
1933년 독일을 떠나 미국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교수로 취임, 통일장이론 개척에 힘을 기울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원자폭탄 연구에 몰두하자, 미국의 과학자와 망명한 과학자들은
원자폭탄을 가질 필요성을 통감하여 당시 대통령 F.D.루스벨트에게 그 사정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다.
이것이 미국에서의 원자폭탄 연구, 맨해튼계획의 시초가 되었다.

한편, 그는 통일장이론을 더욱 발전시키기에 힘썼다.
그가 말년에 생각해낸 통일장 이론은 아인슈타인 최후의 통일장이론이라고도 한다.
미국에서는 그의 이름을 기념하여 아인슈타인상(賞)을 마련하고 해마다 2명의 과학자에게 시상하고 있다.

1955년 4월 18일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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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인재교육

등록일2015-08-19

조회수7,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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