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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관 대표] '미국의 석유왕' '자선사업가' 존 데이빈스 록펠러 명언, 짧고좋은글귀, 좋은글 ,좋은글귀

 

 

 

 

 

 

 

 

 

 

 

 

 

 

 

 

 

 

 

  

 

 

 

자산가치 현재의 빌 게이츠 3배
미국 내 정유소 95% 지배
미국 역사상 최고 부자로 꼽히는 인물

자선사업가
미국의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1839년 7월 8일 뉴욕 북부 리치퍼드에서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성장한 록펠러는 돈에 대해서는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자기개발서의 원조가 되기도 하는 그의 근검절약, 시간절약, 성공의 지름길과 같은 이야기와 잠언들은 모조리 돈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순간은 1855년 센트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9월 26일 휴이트 앤드 터틀에 주급 4달러를 받으며 경리과 직원으로 입사해 회계장부를 기입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록펠러는 첫 직장에 취업한 9월 26일을 그의 두번쨰 생일로 기념한다.


1859년 친구와 함께 상사회사를 설립하였다.
1863년 부업으로 정유소를 설립한 것이 번창, 1870년 자본금 100만 달러의 주식회사 형태를 갖추어 오하이오스탠더드석유회사가 설립되었다.

이 회사에 록펠러가 사장으로 취임, 타회사의 흡수 ·운임할려계약 등의 방법으로 급속히 사업을 확대하여 나갔다.

1882년 미국 내 정유소의 95%를 지배하는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를 조직하였다.

신대륙이 개척되기 시작했을 때, 영국 여왕이 개인에게 독점 사업권을 하사했던 때를 제외하곤,
이 땅에 이런 절대적인 독점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1899년 오하이오의 주재판소로부터 셔먼독점금지법 위반의 판결을 받은 이 회사는 지주회사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던 뉴저지주에 지주회사 뉴저지스탠더드석유회사를 설립하여 실질적으로 석유업계의 지배를 계속하여,
미국 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유전과 정유소를 소유한 거대한 회사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1911년 미국 연방최고재판소로부터 셔먼독점금지법 위반으로 해산명령을 받고 해체되었다.
그 후 록펠러는 재계에서 물러나 자선사업에 몰두하였다.
1890~1892년 시카고대학 설립을 위해 4억달러 이상을 기부하였다.
록펠러재단 ·일반교육재단 ·록펠러의학연구소 등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거금의 기부금을 낸 록펠러에게 한 목사가 이 돈은 ‘더러운 돈’이라면서 설교를 했다.
록펠러는 그 기부금을 내던 시절만 해도 ‘이 시대 최고의 범죄자’라는 비판을 들어야만 했다.

1937년 5월 23일 97세의 나이로 눈을감았다.


절실함이 더욱 애절할수록 성공 가능성도 높다.

훌륭한 리더십은 평범한 이들에게 뒤어난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공의 비결은 평범한 일조차 비범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의 100% 노력보다는 100명의 노력 1%로 돈을 벌고 싶다.


모든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

모든 기회에는 책무가,

모든 소유에는 의무가 따른다.


거금의 기부금을 낸 록펠러에게 한 목사가 록펠러의 이 돈은 ‘더러운 돈’이라면서 설교를 했다.
록펠러는 그 기부금을 내던 시절만 해도 ‘이 시대 최고의 범죄자’라는 비판을 들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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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인재교육

등록일201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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